안녕하세요, 님!
오랫동안 기다린 가을을 어떻게 만끽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꽤 오랫동안 컨텐츠를 만들고 공유해왔다고 느꼈지만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다녔던 최근 한 달은 오랜만에 느껴본 또 다른 즐거움이었어요. 새로운 시작이 약간의 후퇴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또 다시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느껴져요.
님도 혹시 그동안 미뤄왔거나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면 새로운 계절을 발판 삼아 함께 새롭게 시작해보는 건 어떠세요? 물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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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Casa Azul)은 그녀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기장 같은 곳이에요. 태어나고 자라며 생을 마칠 때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유년 시절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뒤 부모님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한 순간도 이곳에 스며 있어요. 이후 평생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았지만, 칼로는 천장에 거울을 달아 누운 채로 자화상을 그리며 결코 붓을 놓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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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집은 디자인적으로도 특별해요. 강렬한 푸른 외벽과 달리 내부는 노란색, 초록색 등 다양한 원색이 어우러져 있어요. 칼로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색채의 힘이 공간에도 살아 있죠. 가운데에는 전통적인 멕시코 주택 구조인 안뜰(patio)이 자리하고, 그녀가 좋아했던 전통 조각과 선인장이 가득해요. 멕시코 건축 위에 칼로의 취향이 쌓여, 집 자체가 그녀의 또 다른 작품처럼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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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흔적도 품고 있어요. 정원에는 리베라가 심은 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고, 두 사람이 함께 수집한 민속 예술품들도 곳곳에 남아 있죠. 칼로가 세상을 떠난 뒤 리베라는 이 집을 국가에 기증했고, 지금은 프리다 칼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멕시코시티 코요아칸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 중 하나로, 칼로가 남긴 휠체어, 침대, 의상, 편지, 미완성 작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프리다 칼로 박물관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으로 버추얼 투어할 수 있는 페이지도 있어, 링크를 방문해 프리다 칼로의 집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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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올의 남성복 디렉터로 부임하기도 한 조나단 앤더슨은 1년에 20개 가까운 컬렉션을 지휘할 만큼 현재 패션계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 중 하나예요.
그런 그에게 창의성과, 옷의 의미 그리고 일하는 철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인터뷰 중 일부를 함께 공유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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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런웨이에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룩을 선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절제된 스타일로 입으시는데,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건가요?
A. 제가 하는 일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직접 요리하면 정작 내가 먹기는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빈 캔버스’ 같은 상태여야 다른 사람에게 나의 것을 투영할 수 있다고 느껴요. (중략) 패션에는 혼란과 히스테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절제시킬 무언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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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라오면서 자신의 몸을 어떻게 느꼈나요? 아이러니하게 디자이너들은 외모가 출중하고 다 갖춘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몸에 대해 늘 복잡한 감정을 품곤 하잖아요. 제 생각엔 그런 갈등이 오히려 비율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무언가를 창조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고도 생각하는데요. 신체적으로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느껴왔는지 궁금해요.
A. 디자이너의 역할은 ‘불완전 속의 완벽’을 찾아 헤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일해요. 그래서 제 외모에 관해서는 오히려 현실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어요. 타인과 비교도 하게 되고 그게 때때로 불안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오랫동안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망설였어요.
하지만 미디어가 변하면서 이제 진정성을 요구해요. 요즘 세대는 당신이 무엇을 만들고 어떤 것을 믿는지 알고 싶어 해요. 오늘날 ‘숨어 있는 디자이너’가 통할 때도 있지만,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대중의 호기심을 막아버리면 알맹이가 없는 꿈만 파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제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업계에 들어왔듯, 누군가가 저를 보고 영감을 받기를 바라니까요.
그래서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창의성이란 궁극적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건강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를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것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자세가 긴장을 유지해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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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입은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면 호감이 식기도 하나요?
A. 아니요. 저는 하루 종일 옷을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옷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더 끌려요. 그래야 제가 저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저는 ‘못생김’조차 흥미롭게 봐요. 제 취향과 현실을 흔들어 주니까요. 어떤 때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더 크게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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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도 많이 받으셨는데 그때의 기분은 어때요? 그 기분은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 편인가요?
A. 상은 항상 고맙죠. 인정을 받는 일이고, 저 개인만이 아니라 팀 전체에 대한 찬사니까요. 하지만 그 밤이 끝나면 끝이에요. 제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어디쯤 와 있나’를 자각하는 게 두려워요.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니까요. (중략) 그래서 매 컬렉션을 시작할 때마다 전체를 부숴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늘 ‘진행형’이어야 하죠. 그래야 제가 ‘여기에 도달했다’라는 감각에 갇히지 않거든요. 그게 제 자아를 적당히 눌러줍니다. 패션은 사람을 완전히 빨아들이는 업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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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반 고흐는 평생 약 2,000통의 편지를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돼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903통의 편지 중 대부분이 그의 형제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테오에게 보내진 것이었는데요. 26살이 되던 해, 고흐가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동생 테오는 평생 가장 충실한 후원자였어요.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때부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절망하던 때의 솔직한 마음은 수많은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오늘은 그 중 인상깊었던 1882년 7월 21일 금요일에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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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벌써 시간이 늦었지만, 그래도 꼭 다시 편지를 쓰고 싶었어. 네가 곁에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네가 필요하고, 가끔은 우리가 마냥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오늘은 나 자신과 약속을 했어. 지금 내가 겪는 병의 증상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로. 이미 충분히 시간을 허비했으니 이제 정말 일을 이어가야 해.
그래서 몸이 좋든 나쁘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시 꾸준히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 다른 사람들이 ‘그건 다 옛날 그림일 뿐이야’라고 말하지 못하게 말이야.
오늘은 그림에 담긴 요람에 색을 조금 더해봤어. 또 며칠 전에 네게 보낸 초원 그림에도 다시 손을 대보고 있어.
(중략)
나 같은 사람은 병에 걸릴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 네가 알아야 하는 건,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야. 진실에 도달하려면 오래도록 치열하게 일해야 해. 내가 원하는 목표는 정말 고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좇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중략)
인물이든 풍경이든, 나는 얄팍하게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싶어.
결국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저 사람은 깊이 느끼는구나, 섬세하게 느끼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이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투박하게 여기기 떄문에 오히려 더 그렇지 않을까도 싶어.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거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나아가고 싶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뭘까? 보잘 것 없는 존재, 괴짜, 불쾌한 사람, 그러니까 가장 낮은 것보다 더 낮은 자 정도겠지. 좋아. 설령 그렇다 해도, 내 그림을 통해 그런 괴짜, 그런 무명의 사람의 마음 속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이것이 내 야망이야. 그것은 원망보다는 사랑에 비롯된 것이고, 열정보다는 평온함에서 비롯된 것이야.
나는 종종 엉망인 상태에 빠지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차분하고 맑은 조화로움과 음악이 있어. 가장 가난한 집, 가장 더러운 구석에서도 나는 그림을 봐.
(중략)
내가 말하는 ‘끈기’란 우선 꾸준히 일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 때문에 자신이 가던 길을 버리지 않는 것이야. 동생아, 나는 희망을 품고 있어. 앞으로 몇 년 안에, 아니 지금부터다로 내 그림에 네가 기울인 희생에 대한 보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리라고.
(중략)
그래서 몇 해 전 현대 화가들 사이에서 옛 거장들을 흉내 내는 유행이 있었던 건 실수였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밀레가 한 말이 옳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자기 아닌 다른 무엇처럼 보이려는 건 어리석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말 같지만, 바다만큼 깊은 진리야. 나는 무엇보다 이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해.
동생아, 내가 꼭 말하고 싶었던 건, 무슨 일이 있든 다시 매일같이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이고, 또 네 편지를 몹시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잘 자라는 인사도 전한다.
잘 있어.
너의 형, 빈센트가
추신: 두꺼운 앵그르 종이를 잊지 않고 보내줘. 샘플을 동봉했어. 얇은 종이는 아직 충분히 있어. 두꺼운 앵그르 종이엔 수채와도 가능하지만 상팽 종이에는 아무리 해도 탁해져 버리네.
오늘 그린 요람 외에도, 요람을 백 번은 더 그리게 될 거야. 끈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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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사호 info@saho-offici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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